▶ 책소개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은 1,000회 이상의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수중 포토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만나온 "바다생물" 의 이름을 풀이한 책이다.
책에는 고문헌을 뒤지고 외딴 갯마을을 찾아다니면서 뭇 생명들의 이름의 기원을 추적해온, 열정적인 스쿠버 다이버의 자취가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는 신화와 전설, 생물학적 지식, 국어학적 문헌정보 등을 한데 어우러 바다생물 이름의 흥미진진한 비밀을 추적해 나간다. 108개 생명체들의 이름이 저마다 그 사연을 담고 있는데 저자는 바다생물의 이름을 크게 ‘생긴 모양에서 따온 이름’, ‘생태적 특성에서 따온 이름’, ‘육지생물 이름에서 따온 이름’, ‘민담이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이름’ 등의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책은 수많은 바다생물 가운데 108개의 이름을 가려 뽑아 그 어원 또는 역사적 배경, 생태적 특성, 신화와 전설, 일상생활 속에서의 쓰임 등을 상세하게 풀이한다. 어류, 연체동물, 절지동물, 자포동물, 극피동물, 포유동물, 해조류, 파충류, 기타 등 9개 장으로 나누어 소개하며 스쿠버 다이버이자 사진기자인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수중 촬영 사진과 함께 바다생물의 이름에서 차가운 ‘학명’을 제거하고 오랜 시간의 뿌리를 복원해내고 있다.
“전설 속 절대 권력자인 용의 아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다. 엄청난 덩치를 가졌고 머리 위로는 분수처럼 물보라를 내뿜으며,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질러 대는 기이한 동물이었다. 사람들은 수평선 너머로 이 동물이 모습을 드러내면 용의 아들 포뢰(蒲牢)가 너무 놀란 나머지 산천이 떠나가도록 울어댄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기이한 동물에게 ‘포뢰를 두들겨 울린다’ 해서 ‘고뢰(叩牢)’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해양 포유류인 ‘고래’의 이름은 이렇듯 신화적 상상력에 기대어 있다. 그래서일까, 선조들은 종소리를 더욱 크게 울리기 위해 종을 매다는 곳에 포뢰를 조각하고, 고래 모양으로 만든 당목(撞木)을 가지고 종을 쳐왔다. 포뢰 입장에서 보면 고래가 새겨진 당목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자기가 앉아 있는 종을 두들겨대니 그 두려움이 엄청났을 것이고, 이 두려움은 당목이 종을 칠 때마다 큰 울부짖음으로 변해 종소리와 함께 산천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고래 이름은 소리와 연관성이 있으니, ‘고래고래 고함지른다’라는 것도 이러한 연관성의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지난 20년 동안 1,000회 이상의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수중 포토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저자(<국제신문> 사진부 기자)가 생명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아름다운 ‘이름’들이다. 고문헌을 뒤지고 외딴 갯마을을 찾아다니면서 뭇 생명들의 이름의 기원을 추적해온, 열정적인 스쿠버 다이버의 길고도 지난했던 자취가 이 책 한 권에 오롯이 담겨 있다.
108개의 춤추는 이름들 - 신화와 전설, 생물학적 지식, 국어학적 문헌정보가 한데 어우러지다
바다생물의 이름은 크게 ‘생긴 모양에서 따온 이름’, ‘생태적 특성에서 따온 이름’, ‘육지생물 이름에서 따온 이름’, ‘민담이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이름’ 등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생긴 모양에서 따온 이름으로는 말미잘, 성게, 해파리, 홍어, 도화돔, 갈치, 고등어, 나폴레옹피시, 앵무고기, 나비고기, 해마, 장어, 아귀, 박쥐고기 등이 있고, 생태적 특성에서 따온 이름으로는 해삼, 쏙, 멸치, 군부, 바지락, 담치, 해면, 상어, 청소물고기, 빨판상어 등이 있으며, 육지생물 이름에서 따온 이름으로는 바다나리, 해송, 수지맨드라미, 갯강구, 갯민숭달팽이, 갯지렁이, 쥐치 등이 있다. 그리고 도루묵, 불가사리, 히드라, 군소, 고래, 정어리, 전어, 숭어, 민어, 명태, 삼치 등은 민담이나 전설 속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바다생물들은 이러한 분류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곤 한다. 우리 선조들은 말미잘의 외양이 탈장한 항문을 닮았다 하여 ‘말미잘’(미주알→말미잘)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영미권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네모네꽃의 연약함을 상징화시켜 ‘시아네모네(Sea Anemone)’라고 부른다. 또한 한 가지 이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숭아꽃 색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은 ‘(줄)도화돔’은 강한 부성애의 의미를 상징하여 ‘침두어’라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 담긴 이름으로도 불렸고(수컷은 암컷이 버리고 간 수정란을 입 속에 머금어 부화시키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먹이를 전혀 먹지 않아 수척해지고 머리가 바늘처럼 가늘어진다 해서 ‘침두어’라 불렸다), 명천군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는 ‘명태’ 역시 건조 방법이나 유통·보관 방식에 따라 황태, 깡태, 코다리, 동태, 생태 등의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
온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밥상, 식탁 위에 삼치구이가 올라 있다면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구수한 옛날이야기 한 편을 들려줄 수도 있으리라.
“이 물고기는 ‘망어(亡魚)’라는 별명이 있는데 말이야, 옛날부터 양반 사대부들은 입에도 대지 않았대. 왜냐구? 옛날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아무개가 삼치 맛에 홀딱 반해서, 자기를 관찰사로 임명해준 한양의 정승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삼치를 선물했대. 그런데 강원도에서 삼치를 실은 수레가 한양 정승 집에 도착한 것은 몇 날이 지난 후였겠지? 그땐 기차나 자동차 같은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날 밥상에 오른 삼치를 한 점 뜯어 맛을 본 정승은 비위가 상해 며칠 동안 입맛을 잃어버리고 말았대. 삼치는 맛이 고소하고 부드럽긴 하지만 다른 생선에 비해 부패가 굉장히 빠르거든(그래서 겉은 멀쩡해도 속은 상한 경우가 많아). 그럼 그 뒤로 관찰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승은 썩은 생선을 보낸 관찰사를 괘씸하게 여겨 그를 좌천시키고 말았는데, 관찰사 입장에선 삼치 때문에 벼슬길이 망한 꼴이 된 거지.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삼치를 ‘망어’라고 부르게 되었고, 사대부는 벼슬길에서 멀어지는 고기라 해서 멀리 하게 된 거야.”
선조들의 해학과 놀라운 과학적 통찰력, 그리고 오랜 시간의 뿌리
바다생물 이름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선조들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해학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해삼’을 ‘바다[海]에서 나는 삼(蔘)’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는데, 실제로 현대 과학자들이 해삼에서 인삼의 성분인 사포닌을 추출해냈다. 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아귀’를 두고 ‘낚시를 하는 고기’라 해서 ‘조사어(釣絲魚)’라 기록했는데, 실제 물속에서 아귀가 사냥하는 장면을 관찰하면 등지느러미가 변형된 가시를 흔들어 작은 물고기를 유혹해서 잡아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처럼 스쿠버 다이빙 장비도 없던 시대에 아귀의 사냥을 관찰하고 ‘조사어’라는 기록을 남긴 것은 경이롭다 할 만하다.
또한 불가사리는 신체의 일부가 훼손되었을 때 재생해낼 수 있는데, 선조들은 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의미를 붙여 ‘불가살이(不可殺伊)’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생물 분류학상 극피동물의 재생력을 이미 발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탐관오리들의 폭정에 시달려온 민초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군소’(군